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현재 하숙방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전용 리스닝 룸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제일 넓은 공간인 거실도 4평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스피커는 평판이고 평판을 잘 울리는 앰프는 직렬 3극의 싱글이지만, 평판은 방이 작으면 쓸 수 없는 스피커 형태이므로 이런 콧구멍만한 공간에서는 안 된다. 평판 다음으로 좋아하는 대형 혼도 역시 무리다. 대형 스피커들은 사실 방을 스피커 시스템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는데 리스닝 공간이 받쳐주지 않으면 대형 스피커 특유의 세계를 즐기기 보다 고문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 되기가 십상이다. 이런 연고로, 지금 쓰고 있는 시스템은 그야말로 나의 이상형과는 정 반대의 모양을 하고 있다 -- 소형 2웨이 모니터와 TR 앰프로 구성된, 극히 보통의 오디오 시스템. 다소 처량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들으러 다닌 끝에 선정한 시스템이다. 직렬 삼극과 대형 스피커의 통쾌한 음을 이런 미니 시스템으로 흉내내기는 어렵겠지만, 비스무리한 냄새가 조금은 나야 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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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서브시스템으로 쓰던 브라이스튼과 ATC의 조합을 다시 채용해도 좋을 것이었지만 굳이 그 시스템을 내다 팔고 다시 짜맞춘 것은, 역시 ATC의 저역 한계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ATC의 아랫도리는 중후하고 심지가 있는 좋은 소리이지만 레인지가 너무 좁다 -- 70Hz 정도가 고작이어서, 오페라나 낭만파 이후의 교향곡 등을 듣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ATC를 좋아한 이유는 그 다이내믹 레인지와 마치 대형 스피커를 듣는 것 같은 유유자적한 음 조성 때문이었는데, 소형 2웨이 중에서 그 쪽으로 ATC를 뛰어넘는 스피커가 있을까? 그런 스피커는 수가 아주 적은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부자들은 큰 집에 산다. 소형 스피커를 살 이유가 별로 없다. 서민들은 작은 집 때문에 작은 스피커를 쓰게 되는데, 돈이 많이 없으니 비싼 스피커를 살 수가 없다. 소형 2웨이로 100dB를 넘는 음량을 뻥뻥 내려면 당연히 호되게 비싸진다. 물건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버는 회사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시장 규모가 있어야 제품 기획을 할 것이므로, 이렇게 수요가 별로 없을 것 같은 "비싼 소형 스피커"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그 나오기 어려운 "괴물 소형 스피커"들이 그래도 몇 개 있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선택한 스피커는 베리티 오디오의 파르지팔 모니터. 보통 오디오 살롱에 가면 파르지팔 풀 시스템을 전시해 놓고 있기 때문에 파르지팔에 모니터 버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물 것으로 생각한다 -- 하지만 원래 파르지팔은 모니터로 기획된 스피커이다. 베이스 부는 나중에 추가 설계해서 단 거고... 베리티 오디오의 고객들 가운데는 프로 녹음 기사들이 많고, 바로 그 때문에 파르지팔은 전용 운송케이스에 넣어 배달된다. 녹음현장에 상용 모니터를 들고 가야 하는 녹음 기사들 때문에, 아직도 파르지팔 만큼은 모니터 버전을 팔고 있다. 파르지팔 풀 시스템은 2000만원을 가볍게 넘는 대단한 가격. 모니터 버전도 만만찮게 비싸서 800만원을 넘어간다. 파르지팔 풀시스템은 워낙 비싼 과르네리 메멘토보다도 더 비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대단히 훌륭해서 돈 값을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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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과르네리 얘기가 나왔으니 소너스 파베르와 비교를 좀 해 보자면: 파르지팔 모니터는 과르네리 메멘토와 같은 족보의 유닛을 쓰고 있지만 (오디오 테크놀로지의 4H와 스캔스픽의 9700 레벨레이터를 달고 있다. 과르네리는 15H와 7000의 조합이다) 크로스오버가 완전히 다르고 따라서 소리도 확 다르다. 과르네리는 2차의 아주 완만한 필터를 쓰는데 반해 파르지팔은 4차를 쓴다. 크로스오버 포인트도 달라서 파르지팔은 5KHz의 아주 높은 주파수에서 트위터가 들어간다. 음악의 기음을 대부분 4H가 재생하게 되므로, 풀레인지에 수퍼트위터를 달았다고도 할 수 있는 특이한 구성이다. 과르네리가 고음을 담당하는 7000 링 래디에이터의 화려하고 상큼한 음색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파르지팔은 4H의 날카롭고 예민한 중저역이 음의 표정을 지배한다. 과르네리는 인클로저가 여유있는 용적이고 다소 울리는 편이라 소리도 빠짐이 좋고 활달하다. 반면에 파르지팔 모니터는 엄격하고 냉정하며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단정한 소리를 낸다. 양자의 공통점이라면, 음량을 올리면 올릴 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음장, 더욱 솟구치는 음의 기세. 이런 것들은 바로 대형 스피커의 특장점인데 소형으로 그것을 (어느 정도는) 달성한 것이다. 그래서 비싼 거고... 개인적으로 침착하면서도 잘 벼린 칼날같은 파르지팔의 개성을 과르네리 메멘토의 나긋하고 섹시한 개성보다 더 좋아한다. 뭐 ATC의 음을 좋아한 사람이 동시에 소너스 파베르를 좋아하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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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지팔을 울리는 일렉트로닉스는 설명이 필요없는 쿼드의 99-909 시스템이다. 쿼드는 옛날 학창시절부터 좋아했었고, 405는 두 번이나 산 적이 있다. 405의 현대판이 909이므로 (회로도 거의 똑같음) 그 소리는 잘 알고 있다. 쿼드의 CDP는 66시절부터 소리 좋기로 정평이 있었고 99CD도 그 음을 똑바로 계승하고 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최고 레벨의 중음역, 넉살좋고 약간 끈적한 저음, 살짝 까슬하고 처지면서도 감촉이 좋은 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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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면, 쿼드의 개성과 파르지팔의 개성은 서로 잘 맞지 않는다. 파르지팔은 얼른 듣기에 아주 순하고 고운 음을 내는 것 같지만 그 속에 강철같은 깡다구를 숨기고 있는 스피커다. 선진적이고 타협을 싫어하는 파르지팔이 중용과 절제를 가훈으로 삼는 쿼드를 만나서 소리가 좀 어색하다. 파르지팔을 맥코믹의 세퍼릿으로 울렸을 때의 소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었고 크렐의 신형 파워도 그런 대로 좋았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놈들은 모두 몬스터급의 대형 앰프들이다. 작은 방에 작은 스피커로 짜는 시스템에 크렐의 레퍼런스를 들여다 놓기는 싫다. 쿼드는 딱 안성맞춤의 크기로, 베리티와 마찬가지로 디자인 센스가 좋아 내 방에 놓으니 그림이 그럴싸하다. 오디오를 오로지 소리로만 선택하는 분들도 많고 그런 선택의 기준이 아마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테이지의 모양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그림이 좋다면 앰프와 스피커의 개성이 충돌하는 어색함을 다소는 참을 수 있다. 물론 어색하다고 해도 그것은 아아아주 미세한 것으로, "최고의 매칭은 아니다" 정도의 레벨에서 하는 얘기다.

디자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쿼드를 담고 있는 저 수납장은 오디오용이 아닌 평범한 사이드테이블이다. 아이키아에 갔더니 세일을 하고 있길래 사 버렸다. 전용이라고 생각될 만큼 쿼드와 싸이즈가 딱 맞다. 이래저래 안성맞춤인 소형 시스템, 합계 1000만원을 넘어가는 가격이니 크기와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긴 하지만 마음에 흡족하다. 저역도 50Hz 까지는 문제없이 죽 내려가고, 벽에 1미터 내외로 갖다 붙이면 40Hz까지도 내려간다.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플래토 제의 날라리 스피커 스탠드. 디자인으로나 가격으로나 도무지 격에 맞지를 않는다. 빨리 내보내고 제대로 된 놈을 받쳐주고 싶다...

2007/12/23 22:08 2007/12/23 22:08

링크 정리하다가 이제야 접하게 된 슬픈 소식 하나:

알텍 랜싱이 마침내, 공식적으로, 망했다.

물론 80년대에 EV에 넘어가면서 사실상 망한 거고, 97년에 중국에 팔려 갈 때 관에 못질하는 소리가 났었지만... 알텍 상표권을 쥐고 있는 중국의 Altec Lancing Technologies - 저 컴퓨터 스피커 만드는 회사 - 가 지난 9월 마침내 알텍 랜싱 프로 디비젼의 폐쇄를 발표했다고 한다.

JBL도 자동차 부품가게 (보쉬)에 팔려가고... 이제 불우했던 천재 제임스 랜싱의 유적은 싸구려 컴터 스피커 상표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오디오의 첫 걸음을 랜싱과 함께 시작한 나에겐 적지아니 쓸쓸한 소식이다...

R.I.P. : 라틴어 Reqiuescat in Pace 의 약자, "평화 중에 쉬기를 (빕니다)."

2007/11/27 18:03 2007/11/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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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하다보면 자제력이 필요할 때가 많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모양으로, 이거 참 쉽지 않다. 내가 본래 자제를 잘 못하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오디오가 어른 장난감이고 이 장난 할 때는 어른이 애가 되는 것이고보면... 애한테 장난감을 자제하라는 것이 도대체 어려운 주문인 것이다.

LE85 드라이버를 근 7년간 써 왔고, 대부분의 음악을 이것을 통해 들어왔다. 다이어프램이 부서지고 짝이 맞지 않는데도 끈질기게 갖고 논 것 보면 대단히 마음에 든 것인데... 얼마 전 클리블렌드 사는 오디오 친구네 집에서 TAD TD-2001 드라이버를 듣게 되었다.

대단한 성능이었다. TAD 드라이버는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지만 너무나 비싼 가격에 한 번도 진지하게 시스템에 도입한다는 궁리를 해 본적이 없었다... 500Hz부터 20KHz를 커버하는 광대역에, LE85보다 두배는 더 큰 고능률. 알니코 자석에 2인치 구경의 알미늄 리본 보이스코일. 5겹의 바늘끝같이 좁은 슬릿. 게다가 진동판은 타이태늄의 3배 강도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진동전달이 빠른 베릴륨이다. 그 친구 말하길, "If you want'em, I'll sacrifice them for a grand. That's about a half of what I paid."

마침 드라이버를 찾고 있는 중이었고, 부서진 오리지날 다이어프램 대신 쓸만한 진동판을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중이었다. 유혹도 이런 유혹이 없는데... 돈만 많다면 당장 집어왔겠지만...

애가 된다고는 하지만, 애 장난감과는 달리 이건 내 주머니의 돈이 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한 두 푼이 아니고 1000불이다.


자제력.

2004/08/05 01:33 2004/08/0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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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오디오 여정이라 달아놓고 보니 되게 거창하게 들린다. 하지만 오디오 광이라고 자처한 지가 그야말로 4반세기이니 아주 당치 않은 소리는 아닐 터. 이 글은 사실 원래 딴 사람들 보라고 썼다기보다는 스스로 정리를 좀 해 볼 요량으로 쓴 것인데, 그래도 혹시 누군가 읽고 무슨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기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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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경험

음악을 사랑하고 즐긴 지는 퍽 오래 되어서, 아홉 살 무렵 선친께서 사 오신 일본의 4중창단 Dark Ducks의 러시아 민요 모음집을 듣고 신명이 올라 한참 춤을 추었던 것이 기억나는 처음이다. 그 곡조가 퍽이나 인상깊었던지 아직도 대부분의 트랙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선친은 대단한 음악애호가여서 무려 3000장에 달하는 SP 레코드 콜렉션을 보유하고 계셨다고 하는데 나는 본 적이 없고,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유성기와 함께 이미 어느 박물관에 모두 기증하셨던 것으로 안다. 여즉 보유하고 계셨던 한 200여장 되는 LP 레코드를 일제 전축으로 감상하곤 하셨는데, 물론 그건 내가 손 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국민학교 6학년 무렵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려 당시 유행하던 대중음악들을 즐겨 들었다. 제대로 된 오디오가 수중에 있을 턱이 없어서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카세트 테입을 녹음해다가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친구들 중에 두엇은 포터블 전축이 있어 해적판을 구입해서 듣곤 하였는데 몹시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집의 창고에는 고모부가 쓰시던 60년도산 장전축이 있었는데 그 썩어빠진 것을 어찌어찌 뜯어맞추어 소리가 나게 만들었던 것이 말하자면 오디오 첫 걸음이다 (이 스토리는 [자작을 시작하게 된 사연] 포스트에 자세히 써 놓았다). 드디어 소원하던 카세트와 해적판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친구들을 불러다가 자랑하고 분식집에서 한 턱 내기까지 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장전축에 들어있던 앰프는 다름아닌 6AR5 싱글 진공관 앰프였고 스피커는 지금도 찾는 사람이 많은 6 X 9 인치 타원형 텔레풍켄 풀레인지였다! 무엇도 모르면서 상당히 고급 장치로 오디오 인생을 출발한 셈이랄까.

중학교 1학년 때, 서울 사는 오촌 조카네 집에 놀러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오디오를 접하게 된다. 이 조카님은 나보다 다섯 살 연상인데, 지금은 어엿한 가장이요 아버지가 되었지만 그 때는 고등학생이었다. 집이 상당한 부자여서, 고등학생 주제에 방에 그 당시만 해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JBL 스피커며 마란츠 앰프를 늘어놓고 음악을 즐기고 있었는데… 앰프의 모델 명은 잊었지만 그 스피커는 잘 기억하고 있다 – 바로 JBL 가정용 스피커 중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L100 Century 였다. 세상에 전축에서 이런 소리가 나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거다. JBL은 콘 위에 바르는 댐핑재 - Aquaplus라고 부르는 – 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의 첫 인상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걸로 들었던 음악은… 좀 수준이 떨어지는, 하지만 JBL과 너무 잘 어울리는 보니 엠의 “Painter Man”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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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창시절

JBL 스피커 같은 것을 시골 사는 중학생 주제에 입수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집이 그리 가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 취미생활에 무슨 돈을 몇 십 만원씩 내 주는 그런 집은 결코 아니었다. 그때까지 듣던 장전축 더하기 카스테레오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어떻게 좀 발전해 보려고 별 짓을 다 했지만 돈도 없거니와 뭐 아는 게 없으니. 이후 삼성 카세트라디오를 갖게 되어 거기다가 예의 텔레풍켄 풀레인지를 달아 듣는 게 고작이었다.

고교시절에는 방천시장에서 만 원 주고 산 해체 직전의 중고 산수이 리시버에 교동시장에서 부품 사다가 뜯어맞춘 8인치 2웨이 스피커로 나아갔고, 나중에 이 시스템이 발전하여 내가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그럴싸한 소리를 내었다. 삼미와 마샬 유닛을 장비한 2웨이는 어디선가 주워 온 소니 6인치 풀레인지를 중역에 달아 3웨이로 발전하고, 베이스 리플렉스였던 케비닛은 방 벽을 활용한 1.5미터 길이의 프론트 로딩 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게 고 2 말 쯤의 이야기로, 고 2가 그만하면 상당한 경지(?)에 오른 오디오파일이었던 셈이다.

집에서 듣는 시스템의 소리를 나름대로 평가하는 기준은 당시 대구에 많이 생겨났던 소위 “음악감상실”의 소리였다. 지금은 그 음악감상실들 이름도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거기 놓여 있던 장비들은 잘 기억하고 있다. 맥킨토시 2205로 울리는 알텍 604, GAS 앰프질라로 울리는 역시 알텍의 A-1과 A-7, 정체불명의 앰프가 드라이브하는 탄노이 오토그래프. 모두 JBL 센츄리가 발 벗고 평생을 뛰어도 쫓아오지 못할 대단한 소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각별했던 것은 대구의 명물 녹향 음악감상실에 놓여 있던 젠센/RCA의 자작 3웨이 혼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그만 문을 닫고 없어져 버렸다….

오디오 친구는 없었지만 (내가 아는 한 내 주변에서 나만이 유일하게 “오디오”가 취미였다) 아직 어린 주제에 어른 오디오 광들은 제법 만나게 되었고, 마크 레빈슨 같은 수퍼 하이엔드 기기 뿐 아니라 바이타복스며 웨스턴 일렉트릭 등의 빈티지 사운드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그 엉성한 자작 혼 스피커…

그러구러 고3이 되고, 음악 감상이며 오디오는 당분간 멀리 할 수밖에 없는지라 금욕과 고행의 나날을 1년 너머 보낸다. 물론 음악을 전혀 듣지 않은 것은 아니고, 골판지로 탄노이 오토그래프 모형을 만들어 삼미 4인치 풀레인지를 넣어갖고 예의 삼성 카세트 라디오에다가 연결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들었었다... 물론 양친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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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숙기

고3 막바지에 형의 선물로 갖게 된 JBL의 LE8T는 나에게 처음으로 관능의 자극 이상의 무엇을 전해 준 오디오 기기였다. 대형 혼 스피커만을 최고로 알고 있던 내게 8인치도 안 되는 소구경 풀레인지는 음악의 구심적인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이 스피커로 클래식과 보컬을 듣기 시작했다. 역시 선물 – 돈을 지불하긴 했지만 정가의 10퍼센트만 냈으니 – 로 얻은 6B4G 싱글 앰프는 또한 직렬 삼극관이 힘차고 박력있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이걸 오래 즐기지는 못했는데, 자식이 음악을 즐기시는 어른보다 더 좋은 장치를 듣고 있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 고희를 맞으신 선친께 이 시스템을 진상했다. 나중에 내 손으로 일해 번 첫 월급으로 토렌스의 턴테이블을 사서 달아 드렸는데, 선친께서 적지 아니 흡족해 하셨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된 후 오디오 취미는 본격적으로 불이 붙어, 다종다양한 기기들을 섭렵하며 꿈속에 울리는 이상의 사운드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 이상이란 혼의 박력과 스케일에 풀레인지의 정숙하고 단아한 맛을 함께 얻는 것이었고... 아직 자기 집을 갖지 못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저렴한 소형 스피커들 – 미션의 다이아몬드, RCF의 미토 1, 굳맨의 맥심 등, 모조리 중고 – 을 사용하면서 앰프 사냥에 열을 올리는 나날이었다. 미션의 사이러스 II 로 울린 미션 다이아몬드와 쿼드의 405로 울렸던 굳맨의 맥심, 그리고 오디오 리서치 VT60으로 울렸던 RCF의 미토가 제법 근사했었지만, (앰프도 모두 중고...) 그 어느 것도 내가 꿈꾸는 이상의 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리가 쩨쩨하고 답답해서 종내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30대에 접어들어 비로소 내 전용 리스닝 공간이 생기고, 본래 좋아하는 대형 스피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탄노이며 JBL의 스튜디오 모니터들을 써 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앰프들을 바꿔 들어 보기도 하던 차에 – 드디어 운명의 만남, 로더를 듣게 된다. 엔젤 오디오의 쇼룸에서 웨스턴 일렉트릭의 KS형 앰프로 울렸던 로더의 TP-1은 그야말로 근사했다. 거의 이상에 근접한 소리로, 큰 스케일에 우아함까지 겸비한 소리였으니까... TP-1은 너무나 비싸 감히 구입하지 못하고 웨스턴 앰프와 유닛만 사서 평판 배플에 달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평판에 단 것은 달리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혼을 장만할 때까지 임시로 듣고자 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들은 평판의 소리, 혼과도 다르고 여지껏 들었던 어떤 종류의 스피커와도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웅대한 스케일, 막히지 않고 시원한 음색, 깔끔하고 발이 빠른 저음. 물론 로더는 잘 알려진 대로 혼 로딩을 하지 않으면 제 소리를 내지 않고, 낮은 Q와 제한된 최대진폭으로 평판에 달아 듣는 것은 권장할 수 없는 드라이버이다. 평판은 패널 크기에 따라 일정 주파수 아래에서 어쿠스틱 쇼트가 발생, 진폭이 작은 로더를 파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 쪽으로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절대 따라 하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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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근황

근래 4, 5년간은 주로 앰프에 정성을 기울였던 것 같다. 고장나 버린 웨스턴 앰프를 눈물로 송별하고 다시금 로더에 맞는 앰프를 찾느라고 오디오 리서치, 맥킨토시, 마크 레빈슨 등등을 들어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웨스턴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한 때 LE8T를 드라이브하던 5와트 출력의 6B4G 싱글만도 못한 것이었다. 기성 제품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손수 만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웨스턴을 고칠 재주가 없어 내보내는 가슴아픈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자작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참담한 실패를 거듭하며 납땜기와 씨름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전자회로와 음향의 기본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이 때다. PC의 발달로 과거에는 비용상 개인이 할 수 없었던 연구실 레벨의 실험과 측정이 용이해 진 것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수 년에 걸친 공부와 실험의 부산물이 있다면 측정장비들, 어느 새 한 짐이 되어버린 부품통들과 공구들, 가게를 차려도 될 만큼 모인 기판들과 드라이버들이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수확은 사실 장비나 지식이 아니라 – 물론 지식도 소중하지만 – 일종의 지혜인데, 추구하는 사운드와 시스템의 형태가 명확해지고 범위가 좁아진 것이 그것이다. 즉, 스피커는 평판, 앰프는 직렬 삼극 진공관.

원시적이라면 원시적인 형태이지만 이로써 얻어지는 성능은 결코 현대 하이엔드 기기의 물리특성에 뒤떨어져서는 안되며, 가청주파수 대역을 최저의 왜곡과 최대의 효율로 커버할 것. 원하는 소리의 특징은 개방적이고 통쾌하면서도 품위와 절도를 잃지 않는 것인데, 혹시 다소 품위가 모자라더라도 낭랑하게 울리는 살아있는 소리는 절대 필수. 스피커는 최소한 40Hz에서 15KHz를 과도한 특이성향이나 제한 없이 재생해야 하고, 청취 위치에서 평균 100dB의 음압을 과도한 왜곡 없이 재생해야 한다. 앰프는 10Hz부터 30KHz의 대역을 갖추고 실용 음량에서 중역대의 왜곡이 0.1퍼센트 이하라야 한다, 등등이 그 개요이다.

기술적인 요구사항들이 내가 원하는 사운드의 필요조건이라면, 개방적이고 품위있는 성격은 충분조건이 되겠다. 필요조건이 만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분조건을 논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근래 키트형 진공관 앰프 제품들 가운데 지나치게 2차 고조파 왜곡이 많거나 대역이 좁은 설계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곱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려는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런 회고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알겠지만 내 귀에는 불만이다. 직렬 삼극의 소리는 잘 벼린 칼날과 같이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맛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혼의 박력을 갖춘 풀레인지를 찾는 데 또한 오랜 시간과 자본을 들였다. 로더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본 모양인데, 로더라는 스피커는 음악을 가릴 뿐 아니라 앰프도 방도 사람도 가린다. 아니 도대체 대단히 까다로운 스피커이고, 소유주의 성미에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저한테 맞추기를 강요하는 면이 있다... 풀레인지로 로더에서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대단히 힘들고 돈도 많이 드는데, 그래도 최근에 입수한 수프라복스는 로더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은 대단히 우수한 스피커로 썩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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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래의 계획과 희망

현재의 시스템에 기술적인 불만사항이 있다면: 포노 EQ의 출력 임피던스가 너무 높아 저역이 불안정한 점과 힘찬 느낌이 모자라는 점, 수프라복스 드라이버가 약간 짝짝이라는 점, (한 쪽이 약간 Q가 높다) 그리고 수프라복스에 급전하는 파워 서플라이가 정전압형이라는 점이다. 음질상의 불만은 저역이 무르고 다소 뭉개지는 경향, 중고역이 고상하고 점잖기는 한데 짜릿하고 알싸한 맛이 덜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이는 앞서 말한 풀레인지 스피커의 어쩔 수 없는 제약이긴 하지만 포노 EQ와 CD 플레이어가 미비한 때문이기도 하다.

CD 플레이어는 그저 쓰기 편하고 믿음직하며 저역이 너무 날리지 않는 것을 골라 써 왔고, 지금 사용하는 레가 CDP는 거기다가 더하여 예쁜 고역으로 이름난 좋은 제품이다. 그러나 역시 보급가격의 “쓸만하고 괜찮은” 물건이므로, 현재 시스템의 성능에 비교할 때 여러 모로 처지는 것을 느낀다. 플레닛의 트랜스포트 부분은 대단히 우수한 성능이므로 그대로 쓰되 DAC를 자작하여 음질 향상을 꾀할 수 있지 않을까…

스피커로 말하자면, 로더로부터 알텍의 A-7을 거쳐 PHY-HP, 다시 현대 풀레인지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수프라복스를 사용하면서 느낀 것인데, 역시 두 가지 – 구심적이고 우아한 풀레인지의 미점과 박력있고 웅대한 대형 혼의 세계 – 를 한 스피커로 다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상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이상이고, 그 이상에 최대한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재미와 보람이 있는 줄을 슬슬 느끼는 중이랄까… 대형 평판에 단 수프라복스의 스케일은 15인치 2웨이 혼형인 JBL의 L200에 결코 못지 않지만 음압감이랄까 중량감, 침투력, 대형 스피커 특유의 여유만만하고 장쾌한 울림새는 끝내 얻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이것은 엔지니어링이나 음악성의 미비가 아니라 물리법칙의 제한이므로, 풀레인지로는 여기서 멈추기로 마음먹고 있다. 장래 경제적 여유와 생활공간이 허용한다면 젠센이나 클랑필름의 필드코일 우퍼와 대형 중고음용 혼을 배플에 달아 울려보고 싶지만, 과연 그것으로 수프라복스로 달성한 풀레인지의 아름다운 음조에 비길 만큼 멋진 혼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을는지.

프리앰프는 포노 단의 설계를 변경하여 다시 만드는 김에 통도 새로 제작하고 전원부도 강화하려고 궁리 중이다. 자작할 때 앰프 통 만드는 것이 가장 골치아프고 비싸게 먹히는 부분인데, 아직 뾰족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고 있다. 비자성체로 하고 싶지만 알미늄은 실딩이 좋지 않고 강도도 약하므로 어렵고, 철로 하자니 가공이 힘들고... 듀랄루민이나 마그네슘 알로이 절삭 가공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원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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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각설하고, 나의 20여년 간의 오디오 여정은 지금 한 고비를 넘는 중이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이제 방황과 중구난방의 삽질을 대강 접고 깊이를 추구할 때가 왔다고 느끼는 중이랄까. 사람이 깊이가 모자라면 그 사람이 울리는 음악도 깊이가 없다. 모친께서는 아직도 내가 고교시절 삽질로 만들었던 2웨이 스피커를 보관하고 계시는데, 그걸 들어보면 10대 시절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소리에 담겨 떠오른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세련되어졌고, 둥글어졌고, 퍽 안정되었지만 - 솟구치는 정열이나 멍하게 만드는 관능, 무엇보다 순수하고 속시원한 원색의 개성은 나이와 함께 퇴색해 버렸다. 뭐, 늙어가는 거니까 그건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대신 원숙하고 늠름한 맛은 있어야 할 텐데...

2004/03/14 12:29 2004/03/1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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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라고 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으로 보통 형용이 되지만, 간혹 첫 눈에 반해서 무덤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 오디오 광들은 다들 첫사랑이 있는데, 대부분의 첫사랑은 스피커, 처음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눈물을 따르게 만들었던 스피커이다. 나도 물론 있다. 지금 그 얘길 하려는 거다.

큰 형이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가 귀국하게 되었다. 난 고3이었고... 뭐 꼭 필요한 것 있으면 사다 주겠다고 하길래, 덜컥 염치도 없이 한 부탁이 "저.. 형 아끼하바라 가시면 JBL LE8T라는 스피커 알맹이를 파는데 한 조만 사다 주세요" 였다. 불쌍한 큰형, 그게 얼마짜린지도 모르고 "응 그러마" 하였더랬다. 그게 85년 겨울이었으니까, 그 시절 가격으로 미국 현지에서 개당 200불, 일본에서는 한 조에 약 8만 엔에 팔리고 있었다. 큰 형 월급 반 가까운 금액이다. 나 같으면 가격 듣는 순간 180도 뒤로 돌아 해서 그냥 들어왔을 건데 (그러니까 동생이지) 큰 형은 없는 돈 탈탈 털어서 그걸 사 왔다! (그러니까 형이지) 그게 처음으로 내 것이라고 소유하게 된 "명품" 스피커다. 하츠필드나 하크니스도 스피커 역사상 잊혀지지 않을 스피커이지만, LE8T 역시 명기의 반열에 드는 스피커로 "명품"이라 불러 마땅하다. 이 점 아마 생각을 달리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뭐, LE8T가 명기? 웃기고 있네!" 글쎄, 요 밑의 설명을 좀 읽어 보면 내가 그리 생각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지금은 생산 종료하고, 재고로 남아있던 것들도 2002년에 최후의 한 조가 팔림으로써 이제 더 이상 새 것은 살 수가 없다. (간혹 보수용으로 사 놓았던 유닛들을 팔려고 내 놓는 경우는 있다.) 중고는 많이 돌아다니고, 대부분 서라운드가 다 부서지고 없거나 센터돔이 푹 들어간 처참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상태로도 보통 10만원 이상 달라 한다. 이걸 JBL 공장에 보내 원상복구하는데 송료 포함해서 한 50만원 든다. 국내 스피커 수리점에서는 10만원 정도로 할 수 있지만 최후 수단이다. 중고라도 구해서 수리하고자 하는 분들은 빨리 해야 한다... 오리지날 부품도 언제까지나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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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8T의 역사 ]]

LE8T는 원래 D208이라는, 알텍 755를 겨냥해서 경쟁하려고 만든 PA용 스피커가 그 조상이다. 역시 원조는 웨스턴... 사실 755도 원래 PA용이다. 그러니까 알텍이며 젠센이며 JBL 모두 사실 웨스턴을 베끼고 베끼다 성공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알텍 드라이버 중 제일로 치는 것은 288과 802인데, 288은 웨스턴 593 베낀 거고 802는 555 베낀 거고... JBL 375 역시 웨스턴 593 카피고, 175는 알텍 802 베낀 거고. D 씨리즈는 유명한 D130을 필두로 D131, D123, D208/216 이렇게 네 종류가 있었는데, 알텍의 스트레이트 바이플렉스 콘에 대항하여 커비닐리어 콘에 알미늄 센터 돔을 장비한 설계였다. 가정용으로도 팔았지만 역시 겨냥하고 있던 주 시장은 극장용과 PA 장비 시장이었다. 이들 스피커들은 당시 드물었던 (비싸니까) 알미늄 리본 보이스코일을 채용한 것으로 되어 있어 특기할 만하다. 특히 D208과 D216은 소구경 페이징 스피커 - 백화점 천장이나 지하철 역 - 로 쓰도록 만든 것으로, 음성 대역의 충실하고 정확한 재생에 주안점을 둔 설계이다. 755처럼 납작하게 만든 것도 씰링 콤파트먼트에 잘 들어가라고 그렇게 설계한 거고... 아래 사진이 D20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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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0이 펜더 기타 앰프에 들어가는 바람에 엄청나게 팔린 것 처럼, 이 D208은 그 후 LE8이란 모델로 발전하여 이름난 녹음기 메이커 암펙스에 모니터 스피커로 납품되어 명성을 떨치게 된다. 오리지날 208은 거의 변경없이 프로용으로 계속 살아남아 2115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208과 LE8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서라운드가 린넨에서 스티로폼으로 바뀐 것이다 (다른 LE 씨리즈 드라이버들도 이 즈음 다 폼 서라운드로 바뀐다. 폼 서라운드는 가볍고 공진 흡수 효율이 좋아 대음량에서 디스토션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암펙스의 요구사항에 맞추느라고 변종이 많이 나와서 LE8-2, LE8-6 등의 여러 종류가 있었다. 나중에 가정용으로 개발한 랜서 44에 들어가는 모델부터는 아쿠아플러스라고 JBL 특유의 미백색 댐핑재를 발라 나오게 되고, LE8T로 명칭이 바뀌고, 나중에 자석이 알니코 5에서 페라이트로 바뀌면서 명칭이 다시 LE8T-H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콘 프로파일, 알미늄 리본 보이스코일 등은 원래 그대로 변경된 적이 없다.

[[ LE8T의 특징과 매력 ]]

이 드라이버는 풀레인지, 그러니까 단발로 전대역을 재생하는 설계이다. 물론 불가능하다. 보통 풀레인지는 그래서 저역을 잘 하든지 아니면 고역을 잘 하든지 둘 중 하나다. LE8T의 경우에는 저역이 장기다. 6.5인치 (8인치라고 하지만 실제 콘 구경은 7인치도 안 된다) 소형 스피커로서는 믿을 수 없는 저역을 내는데, 통 설계에 따라 30Hz까지 플랫하게 나오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윗쪽으로는 아무리 잘 봐 줘도 10KHz가 고작. 그런데 이게 바로 천재의 솜씨가 나오는 부분인데, 그 10KHz밖에 안 나오는 대역으로 하도 솜씨있게 밸런스를 잡아 놔서 마치 훨씬 더 위로 좍 나오는 것 같이 착각하게 된다.

고역의 독특한 광채, 로더나 텔레풍켄과는 많이 다른 LE8T의 액센트는 바로 알미늄 센터돔이 부리는 재주이다. 이 알미늄 돔은 폼으로 달아 놓은 것이 아니다 (보통 메탈 센터돔 달린 스피커들은 그냥 폼이다) - 보이스코일 포머에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인덕티브 커플링이라는 현상이 발생, 마치 돔 트위터처럼 동작한다. (다이아톤의 PM610도 그렇다. 천으로 만든 더스트캡 안에 듀랄루민 돔이 들어 있다.) 이 "트위터"의 구경이 2인치나 되는 바람에 고역이 10K 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인덕티브 커플링 덕택에 아주 높은 주파수에서도 임피던스가 거의 플랫하다. 플랫한 임피던스 덕택에 진공관 앰프로 울리기가 아주 좋고, 청감상 고역이 더 뻗는 듯이 들리게 된다. 가벼운 음악 듣는데는, 특히 대중음악이나 보컬 듣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현악을 들으면 비로소 뭔가 빠졌다는 게 표시가 난다...

알미늄 리본 보이스코일, 더우기 그게 2인치나 되는 대구경이고 게다가 언더헝 (자속 갭보다 보이스코일이 얕은 걸 말하는데 굉장히 비싸게 먹히는 설계임) 으로 되어 있다. 언더헝인데도 대진폭형이고, 대진폭형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속 갭이 좁고 정밀하다. 이런 컨셉의 풀레인지가 또 있나? 오리지날로는 없다. 포스텍스 200씨리즈는 갖다 베낀 LE8T 카피니까 언급할 가치도 없고, 비교적 비슷한 트루소닉 80F가 있지만 여기저기 설계가 차이나는 점이 많다. LE8T보다 뛰어난 풀레인지는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아이디어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명기라 하는 것이다.

[[ 그리고... 단점들 ]]

단점, 또는 한계도 물론 있다. 일단, 애사당초 무지 비싼 초 고급 풀레인지로 만든 게 아니라는 점 염두에 두어야 한다. LE8T는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근접 모니터용, 혹은 페이징 용이라는 설계 의도에서 나온 드라이버다. 로더처럼 원래 비싸고 원래 고급인 음악감상용 풀레인지와는 계통이 다르다는 거다. (로더의 상급기종들은 처음 나올 때부터 탄노이보다 비쌌다)

  • 단점 1. 위에서 말한 대로, 고음이 뻗지 않는다 -- 지향성도 나쁘고. 섬세 우미한 톤, 광대한 음장감, 초정밀 해상도, 이런 건 못 한다.
  • 단점 2. 콘 구경이 작으면서 진폭을 크게 잡아 놓았기 때문에, 대음량재생을 하게 되면 고역이 절렁절렁거린다. 인터모듈레이션 디스토션이라 하는 것인데, 큰 소리 내라고 만든 스피커는 아닌 셈이다.
  • 단점 3. 능률이 89dB로 낮다. 일반적인 6.5인치 홈 하이파이 스피커보다는 한결 높은 능률이지만, 역시 2A3이나 45 같은 싱글 앰프로는 울리기 힘들다. 최소한 10와트는 필요하고, 한 30와트 되어야 소리가 빠지기 시작한다.
  • 단점 4. 캐비닛을 베이스 리플렉스나 패시브 래디에이터 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밀폐형이나 혼은 안 된다) 통이 제법 커진다. 75-80리터 정도 되어야 제 소리가 난다. 그 정도면 가정용으로서는 최대급이다.
  • 단점 5. 이건 꼭 단점이랄 수도 없고... LE8T 혹은 JBL 스피커 일반의 성격이라 하는 게 맞을 터이다. 즐겁고, 명쾌하고, 편하고, 알기 쉽고, 기분 좋다. 그러나 깊이가 없다. 사람으로 치면 명랑하고 성격좋고 매너좋은 친구라고나 할까. 그러나 아쉽게도 인생의 깊은 맛을 아직 알지 못하고, 정말 어렵고 힘들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닌 거다. 그래서 음악도 가볍고 명랑한 음악은 썩 잘 하지만 비극이 깃들어 있고 영혼의 깊이를 재는 음악에는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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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인 까닭에, 이미 상용하는 스피커가 아니라 고이 모셔두고 어쩌다 한 번씩 향수에 젖어 울려보는 스피커인 까닭에, 온갖 단점들은 용서되고 이쁜 점만 부각된다. 어쩔 수 없다, 뭐 바로 그런 게 첫사랑이니까.

2004/03/09 01:05 2004/03/09 01:05

풀레인지 팬으로서 새로운 드라이버를 만나는 것은 대단히 익싸이팅한 일이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 더 그렇다. 새로이 풀레인지를 설계해서 시장에 내 놓는 나라는 이제 일본과 프랑스 뿐인 듯하다. 일제 풀레인지들은 소리가 대충 뻔해서 그리 큰 흥미가 없지만, 프랑스 제품들은 재미있는 물건이 많다. 오랜 전통의 오닥스, 내가 최근까지 사용했던 PHY-HP, 신흥 업체인 페르땡, 그 외 무수한 가라지 업체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신개발 풀레인지는 역시 프랑스의 웨스턴 일렉트릭 또는 BBC라 할 수 있는 RTF - 라디오 에 뗄레비씨옹 프랑세즈 - 의 부활판, 수프라복스 215-20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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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수프라복스가 방송용 스탠다드 모니터로 RTF에 납품한 215RTF64 이다. 뒤가 둥그름한 것이 알니코 자석 버전이고, 길다란 통처럼 생긴 것이 필드코일 (전자석) 버전이다. 215-RTF64는 60년대 이래 프랑스의 스튜디오에서 널리 사용되어 왔는데 모델넘버 215는 유닛 구경을, 64는 개발연도를 의미한다 (215밀리미터, 1964년) 사진 보면 알 수 있지만 옛 클랑필름 디자인과 상당히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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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RTF를 디자인한 사람은 몇 년 전에 은퇴하고, 지금은 새로운 주임 기사 겸 오너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Msr. Guy란 양반이다.) 이 양반이 고전 드라이버인 215RTF를 현대에 부활시키자는 아이디어를 품고 수 년에 걸쳐 고심한 끝에 만들어 낸 것이 위 사진의 215-2000 이다. 모델넘버 2000은 2000년을 뜻하고, RTF 부활의 연도를 나타내는 것이란다. 215-2000은 오리지날 64와 마찬가지로 알니코 자석 버전과 필드코일 버전 두 종류가 있다.

2000년 신 개발이니까 당연 소문은 벌써 들었지만 실물을 보기는 올해 처음이다. 수프라복스의 미국 지사가 금년 1월에 생겨서 - 하필 우리 누나 집 바로 옆에 -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서 옛날 RFT의 요즘 버전과 새로운 2종류의 215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 가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로더 PM4A보다 두 배 비싸다) 덜렁 집어온 것이 215-2000 엑씨따씨옹, 그러니까 필드코일 버전이다. 전시실에서 데몬스트레이션 하고 있는 유닛을 조금 헐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잠시 머리가 아득해지는 가격이었다.

PHY-HP보다 여러 단계 우월한 성능, 로더나 포스텍스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 풀레인지 답지 않게 웅대한 스케일. 전자석 드라이버는 길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아직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상태로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필드코일 특유의 유유하고 호연자적한 음이 가장 특기할 만한 장점이다. 100dB을 가볍게 넘는 고능률도 놀랍지만, 풀레인지를 사랑해 온지 10여년, 서브우퍼나 트위터 생각이 전혀 안 나는 유닛은 이 215-2000이 처음이다.

딱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엄청난 돈을 써 버렸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드라이버들 태반을 내다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PHY-HP와 망가 드라이버, 로더 PM7A, JBL D-123 등등을 팔려고 내 놓았고, 망가 드라이버는 벌써 새 주인을 찾아갔다.

JBL에서 알텍으로 갔다가 라우더로, 다시 PHY-HP를 거쳐 이제 많은 사람들이 현대 기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는 수프라복스에 이르렀다. 여기서 더 나가려면 웨스턴 728이나 클랑필름 405로 가야 할 것이지만, 그런 외계 드라이버들은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손이 닿지 않을 가망이 높다. 자세한 사용기는 이 다음에, 좀 더 들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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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5 13:25 2004/02/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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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비는 쿠즈마라는, 슬로베니아에 소재한 작은 메이커에서 제조하는 텐테이블이다. 쿠즈마는 창업 이래 오직 턴테이블과 톤암만 만들어 온 회사로, 회사 이름인 쿠즈마는 창립자이자 오너이며 수석 엔지니어인 쿠즈마 박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내가 쓰는 스타비는 쿠즈마의 데뷔 모델로 1982년에 첫 발매, 85년에 마이너체인지된 버전 2. 워낙 기본 설계가 단단해 20년 동안 단 한 번의 버전업을 했을 뿐이다.

스타비는 정통적인 서스펜디드 벨트 드라이브 형식이다. 일반적인 서스펜션은 3점 지지의 스프링 서스펜션 (미국 AR 사가 오리지네이터이다 -- 토렌스가 유행시켰고) 이지만 스타비의 서스펜션은 4점 지지의 스프링 + 실리콘 댐핑이다. 공진 주파수는 3.5Hz이고, 이 서스펜션이 워낙 효과가 좋아 무거운 리드 (참나무로 되어 있는데다 진짜 유리를 끼어 놓아 무지하게 무겁다) 를 쾅 닫아도 바늘이 튀지 않을 뿐 아니라 스피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서스펜션으로 합계 20킬로에 달하는 회전계를 달아매 놓았다. 플린트와 몸체 부재는 모두 통 참나무.

서스펜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메인 베어링이다. 스타비의 베어링은 흔히 쓰이는 원포인트가 아니라 다이내믹 밸런스를 취한 5점 지지 베어링. 턴테이블은 평소에는 약간 비스듬하게, 좀 헐렁하게 스핀들에 꽂혀 있다가 모터가 회전을 시작하면 자이로스코프 효과에 의해 똑바로 서게 된다. 베어링은 텅스텐 카바이트이고 플래터는 4킬로그램 짜리 알미늄 합금을 고무로 댐프한 것이다.

스타비는 전원공급장치가 기본으로 따라오는데, 이 전원이 또 독특한 것이다. 모터는 일반적인 24극 100V 싱크로너스 교류모터이지만 (나는 직류 모터, 24볼트짜리 장난감 교류 모터, 배터리 구동 등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모터를 일반 상용전기로 구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현파를 생성해서 그것을 A급 밸런스 앰프로 증폭, 그 출력으로 모터를 돌리는 것이다. 정현파의 주파수는 0.4퍼센트 단위로 조절 가능하기 때문에 턴테이블의 속도 미조정은 거의 완벽하게 맞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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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오리지날인 스토기를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스토기는 워낙 비싸다. 스타비와 스토기를 함께 사면 600만원 가량 하는데, 나한테 600만원이 있으면 좀 굶어서 EMT를 사겠다. 아무 턴테이블에나 잘 맞고 (린 제외) 개성이 적으며 중용의 음색을 지닌 암을 찾다가 중고로 싸게 산 것이 지금 장착되어 있는 SME 309. SME는 3012와 씨리즈 VI 이 진짜라고들 하지만 역시 너무 비싸고, 게다가 스타비에는 롱암을 달 수 없다. 309는 씨리즈 VI의 염가판 (이라고 해도 새 걸로 사면 200만원이 넘는 고가) 이지만 제법 훌륭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씨리즈 VI 이 다이내믹 밸런스에 원피스 암인 데 대해 309는 스태틱 밸런스이고 헤드셸이 분리되는 투피스 구조인 점. 그 외에는 동일한데도 가격은 2배 이상 차이나니...

카트리지는 클리어오디오의 아우룸 베타, 오토폰의 XMC-5, 슈어의 V-15를 바꿔가며 쓰고 있다. 지금 꽂혀 있는 것은 오토폰. 셋 중 클리어오디오가 상용 카트리지이고 또 가장 마음에 들지만 친구가 빌려가더니 돌려 줄 생각을 안 한다...

참, 가장 중요한 것: 그래서, 종합적으로, 소리는? 해상도, 스피드, 이런 것들은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진하고 순박하며 고운 음색, 오버하지 않는 점잖음, 이때다 싶을 때 나오는 무시무시한 중량감과 박력, 이런 점들이 양보할 수 없는 나의 리스닝 포인트들이고, 스타비는 그런 부분들을 잘 한다. 좀 어둡고 좀 어리숙하며 좀 둔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2003/06/16 00:23 2003/06/1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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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클랑필름 오이로노르다. 여러 종류의 구성이 있지만 이 그림의 오이로노르는 15인치 필드코일 우퍼 4대를 프런트로딩 혼에 달고, 컴프레션 드라이버 Kl.L301 + 트랙트릭스 사각 혼 Kl.Z301를 2대 (설치여건에 따라 4대까지) 고역용으로 쓰며, 이것들을 다시 가로세로 4. 5미터 배플에 붙인 구성이다. 이 구성으로 1와트당 115dB를 쏟아낸다. 일반 하이파이 스피커로 이 레벨을 내면 백중 구십구 외마디 비명과 함께 푸시식 승천이고, 난다 긴다 하는 프로용 스피커로도 힘든다... 수 백 와트를 넣어야 비로소 비슷하게 날 것이다.

클랑필름 하면 빈티지 애호가들에게는 역시 극장용 스피커들과 진공관들이 관심의 (또는 숭배의) 대상이다. 클랑필름은 독일의 웨스턴이라 할 수 있는 회사로 1928년 아에게, 텔레풍켄, 할스케, 지멘스가 함께 설립한 영화산업 토탈솔루션 컨소시엄이다. 영화 산업이나 진공관, 스피커 등의 역사를 다루는 어떤 책에도 반드시 클랑필름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웨스턴이 프런트로딩 혼과 베이스 리플렉스의 복합 인클로져 (알텍의 A 씨리즈는 본래 웨스턴의 컨셉)와 섹트럴 혼 등의 기술 개발로 스피커 역사에 남는다면 클랑필름은 세계 최초의 정전형 스피커 개발, 더우기 그 정전형을 극장용으로 썼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 35밀리 필름에 음성을 자기기록하는 획기적인 마그네토그라프 기술 등으로 불후의 명성을 쌓았다.히틀러 집권시의 독일에서 괴벨스의 지휘 아래 무수한 프로파간다 영화 제작의 하수인이었고 2차대전 종전 후에도 지멘스 산하 브랜드로 60년대 중반까지 제품을 생산하였지만 1983년 키노톤이라는 회사에 브랜드가 매각되었다. 지금은 다 없어지고 그 이름만 전설로 남아 있다.

클랑필름의 극장용 스테이지 스피커는 위의 그림에 나온 오이로노르 외에도 비오노르, 오이로딘(유러딘) 유로파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모니터용, 휴대용으로 작은 스피커들도 개발했었지만 스테이지 스피커들에 비하면 명성이 희박하다. 가장 작은 오이로딘은 15인치 우퍼(Kl.L401) 와 4인치 컴프레션 드라이버 Kl.L301 (또는 302) 의 2웨이를 2미터 배플에 단 것이다. 오이로딘은 비교적 소형이라 국내에 많이 도입되어 있으며 보통 천만원에서 이천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오이로딘을 배플에서 떼어낸 상태다 (보통 이 상태가 오리지날이고 배플은 만들어 단다. 사진의 사각 혼 앞에 달린 음향 렌즈는 대단히 귀해 찾기 어렵다고 한다. 독일에서 복각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업체가 있는데, 복각품도 호되게 비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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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 음압 110dB의 비오노르는 국내에 딱 3대가 입하되었다고 한다. 황인용씨가 하나 갖고 있다고 하고 또 일산의 누군가가 한 대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대는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 모르겠고... 부품을 구해 복각한 비오노르는 그 외에 많이 있을 것이다. 오이로노르는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에 집을 새로 짓지 않는 한 일반 가정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비오노르와 오이로노르는 글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비오노르는 오이로노르의 소형판으로, 유명한 14인치 풀레인지 Kl.L405 2대를 프런트로딩 혼에 달고 kl.L301 혹은 302 컴프레션 드라이버+혼을 그 위에 하나 또는 둘 설치한 2웨이다. 배플 크기는 2미터 X 3미터. 비오노르는 최근에 독일 하이파이 쇼 및 라스베가스 CES에 등장해서 주목을 받으며, 딕 올셔 등 여러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사운드로 호평을 받았다... 개발된지 반세기를 넘긴 스피커가 말이다. 아래 사진이 2003년 CES에 등장했던 혼 하나짜리 비오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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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뒤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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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 본 스피커 중 최고는 클랑필름 오이로딘이었다. 그런데 많은 고참 오디오파일 분들께서 오이로딘은 비오노르에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 평생 오이로딘도 손대 볼 가망이 없는데 하물며 저 괴물같은 비오노르야... 하지만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다. 과연 얼마나 대단하길래, 꿈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는 저 오이로딘이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최상급기 오이로노르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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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랑필름 정보 웹싸이트

2003/05/05 11:59 2003/05/0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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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스피커는 만원 이하 싸구려로부터 수십만원 넘는 5.1채널 고급품까지 많이 있다. 나는 쭉 보스의 101과 AM3을 써 오다가 (멀티채널은 싫어하기 때문에 5.1은 필요 없음) 이번에 새로 하나 장만했다 - 제넬렉 1029A.

홈 스튜디오나 미디어 프로덕션 쪽으로 약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많이 쓰이는 니어필드 모니터들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어느 스튜디오나 구색으로 다 갖추고 있는 야마하 NS10이나 Auratone 같은 것들로부터, 요즘 널리 쓰이는 JBL, Behringer, K&K, ATC 등등... 하지만 적절한 가격과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성, 기동성 등을 두루 고려할 때 내게 딱 맞는 "이거다!" 싶은 제품은 이것 하나.

파워앰프 내장(그것도 한 쪽에 2대씩 바이앰핑)이고, 24bit/96Khz D-A 컨버터까지 내장하고 있다. 인클로저는 다이캐스트 알미늄이고, 한 손으로 못 들 만큼 무겁다. 단점이라면, 하여튼 4인치 우퍼 탑재의 작은 제품이다보니 저음이 65Hz까지밖에 안 나온다는 거다. 이퀄라이저를 내장하고 있고 또 1미터 내의 니어필드에서 컴퓨터용으로 쓰는 거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지만... (전용 서브우퍼가 있지만 100만원을 넘는 가격. 아무리 업스케일 컴퓨터 스피커라지만 합계 200만원 이상이면 좀 너무하다)

제넬렉은 프로페셔널 오디오 쪽으로는 유명한 메이커지만 민수용품 시장에는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 이 제품은 용산에 가면 구입할 수 있는데, 물론 컴퓨터가게엔 없고 프로오디오 전문점에 가야 한다. 컴퓨터 스피커로 최고급 알텍이나 캠브리지 등을 구입하려 하는 분들, 조금 더 주고 제넬렉을 트라이해 보길 권한다. 스튜디오 모니터로 쓰이는 만큼 정밀한 음장, 레퍼런스급의 충실도, 내구성, 안정성 등 제반 성능이 압도적이고, 음색도 곱다. 소형 스피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쿠스틱 에너지의 AE-1 시그너처... 만큼 상큼하진 않지만, 그에 유사한 성격의 음색이다.

일반 컴퓨터용 스피커, 아무리 수십만원 하는 고급품이라도 실효출력이 10와트 넘어가는 제품 없다. (팜플렛에서는 수백와트라고 떠들지만 말도 안 되는 거짓말) 제넬렉 1029는 DIN 규격으로 RMS 75와트, 피크값은 100와트 넘어간다. 볼륨을 계속 올리고 싶어지는 다이내믹한 재생은 참 일품이다...

2003/04/17 10:54 2003/04/17 10:54

턴테이블 쓰시는 분들이 많이 줄었다. 미디어의 주류가 CD로 바뀐지 벌써 20년이 지났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누가 뭐래도 CD는 미디어 민주화에 크게 공헌한 우수한 매체이다. CD가 비닐 레코드보다 음질이 나쁘다는 것도 옛말이다. 최신 우수녹음 CD들과 요즘 나오는 고급 플레이어들, 특히 잘 만든 수퍼오디오 CD나 DVD-Audio Disk들은 깜짝 놀랄만큼 소리가 좋다. 업샘플링을 거친 CD 소리도 많이 좋아졌다.

하. 지. 만.

나는 아직도 주로 비닐 레코드를 듣는다. 우선 소리가 정말 기가막힌 CD나 SACD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기가막히게 비싸다. 모든 CD가 다 음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특히 파퓰러 음악 쪽은 갈 수록 음질이 개판이 되어간다는 인상이고, 클래식 쪽으로는 타이틀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클래식과 블루스 - 내가 즐겨듣는 - 아날로그 레코드의 카탈로그는 1970년대에 이르러 이미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태좋은 레코드들을 중고 레코드가게나 동네 방송국 따위에서 헐값으로 대량 구입하는 재미도 보통이 아닌지라, 아예 클래식은 취급도 하지 않는 CD Trade 따위에서 시간 낭비할 생각이 들지 않는 거다. 그리고 음질 좋은 아날로그 디스크들은 평판이 확실하게 나 있기 때문에 모험을 할 필요도 없고.

"아닐로그는 수명이 있지 않나?" 내가 죽을 때 까진 염려 없다. 청소와 보관만 신경쓰면 음질 열화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레코드는 튀잖아?" 역시, 잘 간수하고 주의하면 튀지 않는다. 레코드의 간수, 청소, 바늘 선택과 관리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쓰기로 하고, 오늘은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레코드 플레이어, EMT 930st를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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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T는 원래 프로용 방송장비 제작업체로 1946년 독일에 설립된 회사다. 설립자는 W. 프란쯔 박사이고, 프란츠 박사 사후 바코 EMT라는 프로용 전자제품 / 의료기기 메이커에 매각되었다가 2003년 다시 EMT Studiotechnik이라는 회사에 넘어갔다. 지금 바코 EMT는 음향관련 산업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바코 제 써비스부품은 아직도 많이 돌아다니고, EMT Studiotechnik의 현행 신제품은 카트리지에 국한되어 있다. EMT 턴테이블은 세계 전역의 방송국에 하도 많이 퍼져 있어서 중고를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프로용이기 때문에 써비스만 제대로 해 주면 수십 년 문제없는 튼튼한 제품이다.

EMT 턴테이블은 930 외에도 948, 938, 950, 927이 있지만 927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다가 너무 크고 무겁고, 950도 너무 크다. (장정 네명이 겨우 들 수 있다!) 948과 938은 소형이지만 소리가 930보다 못하다는 평이다. 927이나 950을 최고로 치는 애호가들도 많이 있는데 아무래도 930의 명성에 가려서인지 덜 유명한 것 같다.

930은 모노시절에 개발되었다가 나중에 스테레오 이퀄라이저와 카트리지를 탑재하면서 마이너체인지되어 930st로 불린다. 전용 카트리지인 TSD-15는 지금도 신품을 구할 수 있는데, 많은 분들이 구형 프란츠TSD-15가 신형인 바코TSD-15보다 낫다고 한다. 930의 기술적인 특징은 육중한 턴테이블을 초강력 모터로 아이들러 구동한다는 데 있다. EMT에서는 950이나 938처럼 다이렉트드라이브 턴테이블도 만들었지만, 역시 아이들러 드라이브의 소리에 어떤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인지 927이나 930만큼 명성이 높지 않다. 왜 벨트로 하지 않았느냐... 벨트는 코깅과 이니셜 스태빌리제이션 딜레이라는 문제점 때문에 프로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러 드라이브는 럼블이란 문제점이 있지만, EMT의 럼블은 -70dB로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이다.

완전히 개박살난 EMT는 현재 한 150만원 선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상당히 깨끗하고 쓸 만한 EMT 중고는 한 5-600만원, 극상품은 약 800-1500만원 선이다. 새거라고 파는 EMT930st도 있는데, 새것이 아니고 90년대에 바코에서 소량 공급했던 써비스부품을 조립한 것이다. 극상품 EMT930st는 독일 현지 가격으로 8000유로 정도에 아직 소량이 유통되고 있다. 927의 가격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부르는 게 값일 거다.

소리가 얼마나 차이나냐고 묻는다면... 지금 아날로그 재생의 레퍼런스 중 하나인 린 LP-12를 최신 최고 버전으로 구입하면 약 800만원 정도 든다. EMT에 비교하면... 음, 비교가 되지 않는다. 린 한테는 불쌍한 얘기지만... 가라드 301보다도, 토렌스 124 보다도, 반 덴 헐이 레퍼런스로 쓴다는 테크닉스 SP1000 mkII 보다도, 단연 뛰어나다.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의 기기를 왜 소개하느냐 하면... 아날로그 재생의 한 극점에 도달했던 제품이고, 내 꿈에 자주 등장하며, 들어는 봐도 평생 가져볼 수는 없는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흑마술 같은 냄새가 안 나는 제대로 된 엔지니어링의 표본과 같은 기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렇게 비싼 제품을 구입할 수 없지만, 내가 쓰는 기기들은 최소한 "제대로 된 엔지니어링"의 산물이기를 원한다. 다음 기회에, 나의 턴테이블도 소개하겠다... 스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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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s courtesy of Sr. Stefano Pasini.

2003/02/24 11:33 2003/02/24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