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포노 EQ 회로 설계. 이게 프로젝트의 핵심 부분이고, 가장 힘들여 고심한 부분이기도 하다. 설계라고는 하지만, 내 주제에 뭐 새로운 회로를 연구 개발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고... 기존에 개발되어 있는 회로들을 참고하여 내 취향과 용도에 맞게 전용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포노 스테이지 하나만 놓고 봐도 돌아다니는 자료들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지난 수 개월간 모아 놓은 회로도가 30종이 넘어간다. 그걸 다 테스트해 볼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만 골라서 시뮬레이션에 걸어 돌려보고 또 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들을 추려 직접 만들어도 보았다. 포노 EQ는 시뮬레이션만 갖고는 소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서 소리를 들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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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회로. 가장 전통적인 회로이다. 초단 5691로 거의 40배 증폭을 행한 후 패시브 필터로 중고역을 깎는다. 삽입 손실이 20dB 정도 되므로 5692로 다시 10배 정도 증폭을 해서 내보낸다.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아주 좋은 특성을 보이는데... 하지만 시뮬레이션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다. 소리가 뻑뻑하고 뭉친다. 초단 5691에 1.2미리 정도 전류를 흘리기 때문에, 6키로 저항 통해서 패시브 EQ를 드라이브하는 데 힘이 모자라는 거 같다. 초단 증폭도가 너무 높은 것도 문제고... 레코드가 조금만 휘어도 아주 간단히 오버로드한다. 초단관 5691을 병렬동작시키고 증폭을 좀 적게 하고 캐소드 바이패스 컨덴서를 넣으면 좋아질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렇게 만들면 아주 교과서적인 2단 증폭 패시브 EQ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튜브 3개를 써야 하고, 또 아무리해도 2미리 남짓한 전류로 패시브 EQ를 드라이브하는데 6키로 직렬 저항은 너무 값이 낮다. 5691의 플레이트 내부저항은 약 40K이므로 부하 저항도 적어도 그정도 값이 되 줘야 낮은 왜곡을 얻을 수 있는데... 그래서 정통을 약간 벗어난 회로를 만들어 보았다 -- 이 회로 쓰는 프리앰프도 많이 있기 때문에 '벗어났다'고 말하기도 사실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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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앞 뒷 단이 다 5691이다. 두 단 사이에 패시브 EQ를 나누어 넣는다. 고역 시정수가 뒷단에 들어가므로 초단 5691은 저역 시정수만 드라이브하면 되어서 오버로드 문제와 부하저항이 너무 낮은 문제를 한번에 해결했다. 이 회로의 문제점은 고역 시정수가 부하 저항, 즉 포노 EQ 뒤에 들어가는 회로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필터 회로 뒤에는 버퍼를 반드시 쓰는 것이 원칙인데 버퍼 없이 바로 출력을 하게 되면 생기는 문제다. 포노 EQ 뒷단이면 볼륨 거쳐서 라인 앰프인데, 볼륨 위치에 따라 특성이 변하게 된다. 녹음하려고 녹음기나 CDR을 연결해도 특성이 바뀌고... 또 출력 임피던스가 40K 정도로 너무 높은 것도 문제. 하지만 버퍼를 쓴다는 건 결국 캐소드 폴로워나 뮤 폴로워를 쓴다는 얘기고, 튜브 하나를 더 써야 한다. 웬만하면 튜브 네 개로 포노 EQ부터 라인까지 다 만들고 싶고, 또 캐소드 폴로워는 내가 싫어하는 회로로 기초 설계단계에서 이미 쓰지 않겠다고 떠벌린 바 있다.

250키로 짜리 볼륨을 쓰는 것이고 또 라인 앰프의 증폭도가 낮으므로 밀러 이펙트에 의한 고역시정수 변화는 그리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볼륨 최소부터 최대까지 20KHz에서 0.5dB 정도 변화하는 걸로 나오는데, 사실 볼륨을 12시방향 이상 올릴 일도 없으므로 변화량은 0.2dB 이내일 것이고, 간신히 느낄 수 있는 정도다. 녹음할 일도 없으므로 이걸로 한 번 만들어 보았다 -- 실제 만들어서 들어본 결과 청감상 아무 문제가 없고, 소리가 시원해 졌다. 초저역에서 다소 소리가 물러지는 것은 역시 뒷 단의 출력 임피던스가 너무 높고 전류가 넉넉지 못해서 그런 탓인데, 버퍼를 쓰지 않고 튜브 2개로 마무리하려면 이 회로가 제일 나은 것 같다. 이것으로 결정.

패시브 EQ로 정확한 커브를 얻기 위해서는 필터 소자를 들어 가면서 조정해야 한다. 전에 만들어둔 역 RIAA 필터는 바로 이 때 쓸려고 만든 것이다... R13과 C7이 조정 대상인데, 설계치보다 좀 낮은 6.6K (R13), 1480pF (C7) 에서 가장 정확한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최종 측정 결과, 통상 시청하는 볼륨 위치에서 (9 - 12시방향) RIAA 커브 에러는 0.1dB 이하다. (10Hz - 30KHz) 30-10KHz 내에서는 0.05dB 내로 맞아들어간다. 패시브로 이정도 정밀도면 거의 갈 데 까지 간 것이다. 노이즈나 왜곡 특성은 진짜 통에 넣어서 다시 측정할 것이지만, 지금 현재 상태 - 막통에 대충 만들어넣은 - 에서도 -60dB, 즉 0.1퍼센트의 꽤 쓸만한 특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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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로는 저증폭도의 라인 앰프에 250K 볼륨을 쓰고 또 Record Out 기능이 없을 경우에만 정상동작한다. 즉 내가 쓸 라인앰프에 집어넣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제대로 동작한다는 거고 일반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회로는 아니다. 그래서, 만약 캐소드 폴로워가 뭐 어때서? 라고 생각한다면 아래 회로를 참고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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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쪽으로 좀 아는 분들은 이 회로가 눈에 익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자작파들의 관심을 모은 바 있는 Mr. Haggeman의 Cornet과 거의 똑같잖아? 사실 코넷을 갖다 베낀 것은 아니고, 비슷한 토폴로지를 쓰게 되면 회로가 결국 비슷해 지는 것이다. 차이점을 굳이 지적해 보이자면, 헤거만 씨가 시정수 4개짜리 IEC 커브를 채용한 데 반해 내 회로는 고전 RIAA 커브이고 따라서 시정수가 3개다. 헤거만 씨의 디자인과 각 단의 정수도 조금씩 다르다. 결정적으로, 코넷은 미니어쳐 관을 쓰고 또 아주 간단한 (좀 나쁘게 말하면 싸구려) 전원을 달고 있는데 비해 위의 회로는 전부 옥탈관이고 또 초강력 저잡음 전원을 달아 쓰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종단의 캐소드 폴로워는 내가 늘 쓰는 5692가 아닌 VT231 (6SN7의 군용 고신뢰관 )을 쓰는데, 그것은 5692의 캐소드-히터간 내압이 100V로 낮아 캐소드 폴로워에 쓰기가 나쁘기 때문이다. 물론 히터 전원을 플로팅시켜 버리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만, 어차피 내가 쓸 회로가 아니라 참고자료로 공개하는 것이므로 전원에 이상한 개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구성으로 한 것이다. 일반적인 6SN7이나 VT231은 히터-캐소드간 내압이 200볼트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

아주 소량의 파워만 있으면 되는 저 위의 2단 회로와는 달리 플레이트 용으로 무려 20와트, 히터 용으로 다시 10와트 해서 총 30와트의 전력을 소모하므로 파워 서플라이가 제법 커진다. 이 3단 EQ를 만들 거면 라인앰프와는 별전원으로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 대신 저역 특성이 탁월하고 또 부하저항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캐소드 폴로워의 장점이 있다.

다음 기사는, 드디어 실제로 제작!

2005/12/17 22:07 2005/12/17 22:07

진공관 프리앰프 프로젝트 [4] 라인앰프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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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앰프는 별 설계할 것도 사실 없다. 흔히 [유리디체]형이라고 부르는 라인앰프와 모양은 똑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리지날 유리디체는 대전류 저전압 고증폭도의 정전압관을 사용하는 설계인 반면 나의 경우 일반적인 쌍3극관 6SN7 (5692) 을 병렬 사용하고 그다지 전류를 많이 흘리지 않는 대신 전압을 높이 건다는 것 뿐이다. 회로도 극히 간단해서 설명할 것도 별로 없고... 플레이트에 235볼트 걸리고, 캐소드에 6볼트 정도 걸린다. 그러면 튜브 하나당 약 6 - 7 미리암페어 전류가 흐르고, 두 개 병렬이니까 트랜스에는 13미리 정도 흐르게 된다. 입력 볼륨은 250키로인데, 입력 임피던스를 올리려고 더 높은 값을 쓰면 고역이 떨어지게 된다. (밀러 이펙트라고 하는 것) 사실 100키로면 충분한데 어째 구할 수 있는 블랙뷰티가 하나같이 250키로짜리 뿐이다.

입력 볼륨에서 그리드까지 선이 길어지면 그리드 스타퍼 저항 220옴을 넣는게 안전하다. 실제 만들어보고 없어도 문제가 없으면 빼면 되고. 235볼트만 있으면 되는데 왜 쓸데없이 340볼트를 만들어서 다시 강압을 하냐면, 포노 스테이지에는 적어도 그 정도 전압이 필요하니까 그렇다. 그리고 전원 전해콘덴서는 250볼트 내압을 쓰면 안 된다. 직렬 정류관 (5R4, 5Y3, 80 등) 을 쓰고 동시에 6SN7GTB 같은 히터가 늦게 달아오르는 튜브를 같이 쓰게되면 6SN7이 전류를 통하기 전에 정류관이 동작하고, 그러면 전원 무부하 상태가 돼서 콘덴서에 최대 460볼트의 전압이 걸리게 된다. 최소 450볼트 내압을 써야 확실하게 안전하다.

부품 조달도 이미 다 됐는데, 부품이래봐야 볼륨 하나, 저항 여섯 개, 콘덴서 네 개, 아웃 트랜스 두 개가 전부다. 아래는 부품 구입 현황이다.

  • 진공관 5692 : RCA 51년산 프리미엄 선별관 한 조, 180불
  • 라인아웃 트랜스: 룬달 LL1660 10mA 버전 1조, 165불
  • 저항: 리켄 옴 0.5와트 470옴 2개, 220옴 2개 16불
  • 저항: 밀스 12와트 8.2K 2개 9불
  • 볼륨: 알프스 블랙 뷰티 250키로 2련 오디오테이퍼 1개, 59불
  • 콘덴서: 루비콘 블랙게이트 220마이크로 16볼트 2개, 25불
  • 콘덴서: 스프라그 트위스트캔 40마이크로 450볼트 더블, 35불

부품 수가 적기 때문에 하나 하나가 모두 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물론 아웃트랜스. 아웃트랜스를 웨스턴으로 해 볼까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웨스턴 라인아웃 트랜스 1조에 1000불이 넘어간다. 일제 탱고나 다무라는 그보단 싸지만 여전히 비싸고, 이태리산 바르톨루치도 비싸다. 좀 싼 걸로는 영제 소터나 미제 엘렉트라프린트가 있고, 빈티지로는 UTC LS-27이나 A-24가 흔하게 쓰인다. 미국에서는 자작파들 사이에서 지금 룬달이 가격도 싸고 소리도 좋다고 해서 목하 인기가 있다. UTC보다 낫다는 중평에 룬달을 써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전해 콘덴서는 60년대산 스프라그 캔타입이다. 전해액과 절연재의 차이 때문인지 요즘 전해콘덴서들보다 소리가 낫다. 유독성 물질을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이 바뀐 이래 콘덴서들 소리가 전만 못하다고 보고하는 것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 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캐소드 바이패스 콘덴서를 빈티지 코넬 듀빌리에나 스프라그를 쓰고 싶은데 220마이크로 짜리는 잘 없어서 결국 루비콘 블랙게이트로 정했다. 트랜스 직전에 들어가는 강압용 저항은 밀스의 12와트급인데 대용량 저항이 필요하면 늘 쓰는 아주 잘 만든 저항이다. 온도가 높고 대전류가 흐르는 저항은 드리프트가 낮은 권선형이 좋은데, 밀스의 권선형은 인덕턴스도 아주 낮아서 오디오용으로 적합하다. 그리드 스타퍼 저항 220옴과 캐소드 바이어스 저항 470옴은 역시 권선이나 카본을 쓰는 것이 소리가 좋다고 한다. 알란 브래들리는 아직도 개당 1불 정도에 구할 수 있지만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고, 딱 필요한 용량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현재 생산중인 저항기로 가장 빈티지다운 소리가 나는 리켄 옴 카본을 골랐다. 이건 일제 탄소 저항인데, 제법 알이 들어찬 소리를 낸다. 허용오차가 1퍼센트로 낮은 것도 환영할 만하고... 물론 비셰이 저항을 써 보아도 좋겠지만... 한 개 만 오천원씩 하는 가격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회로 간단하고 소리도 좋은 앰프를 왜 많이들 안 만들까? 메이커에서는 앞 기사에서 설명한 바 이유로 할 수 없고, 아마추어들의 자작으로는 쓸 만한 아웃트랜스를 구하기 힘들어서 그렇다고 본다. 룬달이 명성대로 좋은 소리를 내 준다면, 많은 자작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유리디체와 마찬가지로 이런 트랜스 결합 캐소드 접지 앰프는 전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주 조용하고 힘 좋은 전원이 필수이다. 그리고, 회로도 대로 결선하면 출력이 역상이 된다. 내 경우 파워앰프가 역상 앰프기 때문에 그대로 만들면 되지만, 정상 출력의 프리앰프를 원한다면 그냥 트랜스 2차 측을 뒤집어 배선하면 되겠다.

2005/12/03 06:19 2005/12/03 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