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16

Berserk, 또는 Berserker: 원래 스칸디나비안 어에서 독일 - 영어권으로 넘어온 말이며, 라틴어나 그리이스어와는 관련이 없다. 영어로는 버저어크(제 2음절에 액센트) 라고 발음한다. 현대영어에서는 go berserk 하면 화가 난다든지 해서 “하이바가 열렸다“ “눈이 뒤집혔다“ “눈에 뵈는게 없어졌다“ 이런 뜻으로 쓰고 있다. 노르웨이어로는 Berserkr이다.

Ber 는 스칸디나비아 어의 Bjorn( o 의 모양이 좀 색다른데, 그리이스어의 “피“ 와 닮았다. 독일어 식으로 표현하면 o 위에 점 두개, 그러니까 발음이 “비외른“) 의 약어형으로 Bear 즉 곰이다. 영어식으로 해석해서 벌거벗었다는 (bare) 뜻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원상 스칸디나비아 말의 “곰“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Serkr 는 Shirt, 즉 웃옷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bearskin 혹은 bearshirt 라는 뜻이 되어서 Berserk는 곰가죽 옷을 의미한다. 베르세르크들이 전투시 곰이나 늑대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싸웠다는 속설에 부합하는 것이다. 베르세르크 전설과 워울프 전설은 그 기원상 서로 상관이 있는 것 같고, 신화적 구조로 볼 때는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베르세르크는 역사적으로 실존했었다.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한 무리의 베르세르크들이 노르웨이 왕 헤랄드 1세 (872-930) 의 친위대로 고용된 적이 있었다.

현대 전투에 베르세르크 식으로 양성된 전사들을 투입한 예가 있는데,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병사들 중 약물중독 상태에서 전투에 돌입한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비슷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혐의가 있다. 그런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비판이 거세지만 입증되거나 처벌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오늘날의 의학 기술로 병사들을 진짜 베르세르크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지만 사실상 별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고, 그래서 실험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윤리적인 문제나 국제 사회의 비난 때문이 아니고, (언제 그런 게 군사기술 개발에 심각한 장애가 된 적이 있었던가?) 딴 이유 때문이다. 두 가지 대표적인 이유를 들어 보면:

1) 베르세르크가 두려운 것은 그들이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들이라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이 비인간적이라는 데 있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싸울 때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인간들의 예측에서 벗어난 행동을 예사로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병사들이 실제로 적을 공황 상태에 빠뜨리려면 상대방이 그 비인간적인 모습을 두려워해야하는데... 현대전에서 대체 인간적인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는가? 현대전의 병사들은 도무지 상대방의 피나 단말마를 지켜볼 기회도 별로 없고, 전투는 실제적으로 “비인간“ 들이 거진 다 하고 있다.

게다가, 월남에서 약 먹고 돌아버린 미국 부대보다 맨정신으로 멀쩡하게 싸운 한국의 자랑스러운(?) 맹호부대가 훨씬 더 무서웠다고 한다. 맹호부대원들이 베트콩의 머리를 베어 축구를 했다는 전설(?)은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 부대의 용맹...이 아니고 잔인성이 얼마나 인상깊었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미국 병사들은 누가 베트콩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별해 내려고 노력을 했는데 -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 2차로 참전한 한국 군인들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쏴 죽였다. 베트콩이라서, 공산주의자라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놈들이라서 죽인 게 아니었고, 죽일 수 있고 따라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르는 사람“은 죽여놓고 보는 게 확실히 안전하니까 일단 - 애부터 노인까지 - 죽이고 본 것이다.

맨정신의 인간이,이성을 잃지 않고 자기보존 본능이 멀쩡히 작동하는 인간이, 베르세르크니 워울프보다 훨씬 무섭고, 잔인하고, 따라서 훨씬 더 잘 죽인다는 거다.

2) 전설의 베르세르크들이 베트남 전에서 약 먹고 돌아버린 미국 애들보다 더 무서웠다면, 단 한 가지 때문이다 - 종교적, 윤리적 정당성과 우월감.

베르세르크들은 자기들이 오딘 신의 친위대라고 생각했고, 약물 - 알코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에 의한 최면상태 또는 그 이상의 최면을 자진해서 받아들였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 황홀상태였고, 말하자면 탈혼 같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불사신이었다기보다 종교적인 견지에서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어딘가에 속하고 있었고, 따라서 인간들의 조잡하고 무력한 공격이나 무기는 물론이고 인간들의 윤리, 인간들의 나약한 제도나 법률 따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미국 병사들이 전쟁후유증으로 미국 사회 전체가 들먹거릴 만큼 애를 먹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들 베르세르크들은 신 앞에,그리고 자기들이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강간하고 - 이것이 그들의 전문이었다 - 한 인간들 앞에 당당하고 떳떳했으며, 오히려 신의 축복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베르세르크들은 맨정신일 때도 살인 강간을 예사로 했으며, 더구나 적군과 아군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베르세르크들을 고용한 나라나 마을에서는, 그 전설적인 전사들의 도움을 받는 대신 마을사람 몇이 살해당하고 마을 계집애들 몇이 강간당하는 것을 감수했던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기술만 가지고는 베르세르크를 만들 수가 없다. 종교적 열광이 윤리와 무관하게 떳떳이 통용되는 문화 안에서만 그런 것이 가능하다.

근래의 판타지 소설 일부는 베르세르크를 상당히 낭만적으로 묘사하는데... 확실히 낭만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히틀러도 그런 면에서 볼 때 로맨티스트였다. 나는 베르세르크 같은 전사들이 판타지에만 나오고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섭섭하지 않고,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003/02/16 14:30 2003/02/16 14:30

역사책 읽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더우기 프로테스탄트 학자가 쓴 교황사라니, 뭔가 톡 쏘는 맛이 있지 않을까.

역사는 서양 학문 족보에서 철학보다는 수사학에 가까운지라 내 전공과 밀접하다. 전공서적은 일단 재미가 없지만 역사는 재미있다. 타키투스는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도 기대를 잔뜩 하고 읽었는데, 과연 재미있을 뿐 아니라 예견했던 대로 톡 쏘는 맛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황이라 하면 한국 사람들에겐 그저 천주교의 우두머리인가보다 하는 정도의 이해에 그치지만 서양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니다. 오늘날의 유럽은 교황권이 없었으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발전했을 터이다. 유럽이라는 문화적 신원의식 자체도 교황권에 빚진 바 크다. 이 책은 그 빚진 내용들 중에서도 특히 어떻게 이 종교적 위계제도가 그토록 오랜 기간 살아남아 아직도 권위를 주장하고 있는지, 그 적응과 생명력의 비밀에 천착한다.

작가는 요한 12세 (재위 955-964) 같은 인간말종에게 (18세에 교황이 되어 27세에 복상사함) 조소를 보내는 동시에 그레고리우스 7세, 이노첸시우스 3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칭송한다. 역사학자인 그의 시각에는 역사의 추이를 넓게 멀리 읽고 많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그런 통찰을 활용한 인물들이 위대하게 비추어진다. 예컨대 샤를마뉴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경건왕 루이는 종교적으로는 성인일런지 몰라도 황제로서는 낙제인 것이다. 양 쪽 방면에서 다 훌륭할 수는 없었을까.

제도 종교는 과거에 집착하고 Status Quo를 수호하려는 방향으로 그 힘을 기울일 수도 있겠고, 그 반대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촉진하는 혁명적인 세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양 쪽 다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위험한 종교는 역사의식을 결여한 종교가 아닐까. 천국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을런지 몰라도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우리는 뒤를 돌아다보고 앞을 겨누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초월과 내재를 함께 포용할 줄 아는 종교, 혹은 그런 종교인들이 필요하다.

출판정보: Geoffrey Barraclough, [The Medieval Papacy.] Norton, W. W. & Company, Inc., 1979. ISBN: 9780393951004

2003/02/12 14:27 2003/02/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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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R. 딕슨 (Gordon Rupert DICKSON) 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Childe Cycle 이라는 장편 씨리즈를 써서 일약 명성을 날렸다. 사실은 씨리즈 이름보다 이 씨리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Dorsai!] 라는 소설이 더 유명하다.

국내에 소개된 [Dragon and George] 는 그의 Dragon Knight 씨리즈의 첫 권으로, 딕슨의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이다.

딕슨은 다작이어서 평생 80편에 달하는 소설을 썼다. 그는 세 차례 휴고 상을 수상하고, 한 번 영국 환상문학 대상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SF Hall of Fame 에 이름이 올랐다.

딕슨은 2001년 1월 31일, 염원했던 Childe Cycle을 완성하지 못하고 서거했다.

아래 글은 그와 절친했던 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으로 잘 알려진...) 이 그의 서거에 즈음하여 쓴 추도사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고든 딕슨은 훌륭한 작가였을 뿐 아니라 참으로 매력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Lux aeternam luceat e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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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데이브 윅슨으로부터 고든 딕슨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오늘 아침 한 시에 세상을 떴다. 그는 30년 넘게 나와 막역한 사이였다.

우리는 60년대에 서로 만났지만 1970년의 데이먼 나이트 모임이 있던 때까지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나 나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라 새벽에 주방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똑 같은 종류의 괴상한 아침을 만들어 먹는 것을 발견하고 서로 놀랐다: 땅콩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오이절임과 마요네즈를 얹은 토스트. 아마도 하이네켄 맥주를 곁들여 마셨던 것 같다. 그가 천식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이 천식 때문에 지난 10년간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또 천식 때문에 여러 가지 인생의 곡절이 많았던 것도 그 때 알게 되었다.

그 몇 해 전 밀포드 회합때 그는 아주 상태가 나빠져서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고 한다. 누워서 그는 적어도 아홉 권 이상의 소설로 구성된 연작물을 -- 그 중의 세 권은 역사를, 세 권은 현대, 나머지 세 권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 구상했다. 그 연작은 행동형, 사고형, 신앙형이라는 세 종류의 지도자들의 뒤섞임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류의 진화를 보여 주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Childe Cycle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었고, 내 생각에 그 타이틀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전래민요인 Child Ballards -- 그가 수천 년 기간을 두고 추적하고자 했던 저 지도자들의 원형이 틀림없이 여기서 유래했을 것이다 -- 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그 연작은 사십 줄에 접어든 사나이로서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반 세기를 더 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 중에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소설들, 저 유명한 도르사이 이야기들만 출간되었다. 고든은 현실이 그의 꿈을 방해한 것에 대해 실망했다 -- 아무 출판사도 역사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준비하고 쓰는 데 드는 시간에 적합할 만큼 돈을 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도 횡재를 기다렸다. 횡재를 얻으면 그는 플로렌스로 가서 역사소설을 쓰려고 계획했었다. 나는 커다란 덩치의 중서부 사나이가 (사실을 말하자면 캐나다 태생이지만) 그 역사와 아름다움의 와중에서 미소짓고 싱글거리면서 횡재한 돈을 마셔 없애는 것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그의 인생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고 전염성이 있었다. 그가 플로리다 브룩클린으로 나를 방문했을때 우리는 바닷가 초라한 호텔에 붙어있는 초라한 바에서 그의 오십 세 생일을 축하하였다. 우리는 그 바에 있던 게다리를 몽땅 다 먹어치웠고, 방을 하나 빌려 샴페인을 잔뜩 얼려 놓고는 부인인 게이와 시인 빌 네이버즈와 함께 기타를 돌려가며 새벽이 되도록 노래를 불렀다. 게이와 빌은 끝까지 버티지 못했지만, 고든과 나는 끝까지 남아 일출을 보며 건배를 하고, 그 이른 시간에 사람을 접해 본 일이 없었을 꽃게들을 놀라게 했다.

몇 년 뒤 우리가 대서양 쪽으로 옮겨간 다음 고든은 달 탐사선 발사에 참석하러 왔었다. 우리는 우리 둘 다 한 번도 해 본 경험이 없는 원양 스포츠낚시에 돈을 낭비해 보기로 작정했다. 게이는 따라온 것을 후회했지만 -- 바다는 몹시 사나왔고 그녀는 낚시하는 여덟시간 중 대부분을 멀미를 하며 보냈다 -- 고든과 나는 갑판에서 뱃노래를 부르고 해적놀이를 함으로써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고든은 실제로 돛새치를 잡아 박제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주 그날이 그의 인생 최고의 날 중 하나였다고 말하곤 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7, 80년대에 걸쳐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쯤 뉴욕에서 만나 편집자들을 괴롭히러 갔다. 고든은 타고난 아량을 베풀어 나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소개시켰다. 그는 내 첫 편집자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그에게는 이기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는 “딕슨 책을 사는 사람이 다른 손에 홀드먼 책을 들고 어느 걸 살까 망설이지는 않을 거야,“ 하고 말했다. “그들이 만약 둘 다 마음에 든다면 둘 다 사겠지.“ 그게 진짜 그런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정말 고든이 할 만한 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변치않는 친구요 뼛속까지 낙관주의자였던 것이다...

(중략)

고든은 지식인이 아니었고 그런 척도 한 적이 없지만 나름대로 세련된 문학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근대주의 작가들을 모르지 않았고 (나처럼 그도 헤밍웨이에 열중했었다) 프루스트를 읽고 또 읽었으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스토리는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죽은자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혼블로워 소설 한 권을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다 집어던졌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는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80년대에 들어서는 그리 자주 다니지 못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건강도 악화되었고 또 노모에게 자식된 도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이드신 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있었는데 갈수록 그의 집은 일인 양로원이 되어갔다.

우리는 자주 전화통화를 했다. 나는 그의 과학 자문이었고 게이는 그의 번역담당이었다. 그는 10 천문단위 거리에서 대각성이 얼마나 밝을지 물을려고 또는 스페인어 시 한 도막을 번역해 달라고 내게 전화를 하고 그러면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나 뒷소문들로 한 시간 남짓 수다를 떨곤 하는 것이었다...

(중략)

오늘 아침 게이가 말한 대로, 그가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는 것을 믿기가 어렵다. 그는 그토록 생기넘치는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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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홀드먼의 유창하고 능란한 이야기가 내 번역을 통과하고 나니 어눌하고 지지부레한 글이 되고 말았다... 역시 번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2003/02/10 12:26 2003/02/10 12:26